컴퓨터 좀 다뤄봤다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란색 바탕에 흰 글씨로 가득 찬 BIOS 설정 화면을 기억할 것이다. 키보드 방향키로만 조작해야 했던 그 투박한 화면은 수십 년간 PC의 부팅을 책임져 온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화려한 그래픽과 마우스 조작이 가능한 새로운 설정 화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낡은 BIOS의 시대를 끝내고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은 'UEFI(Unified Extensible Firmware Interface)'이다.
UEFI(Unified Extensible Firmware Interface)는 '통합 확장 펌웨어 인터페이스'의 약자로, 운영체제(OS)와 컴퓨터 펌웨어 사이의 통신 규격을 정의하는 하나의 '사양(Specification)'이다. 과거의 BIOS를 완전히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현대적인 펌웨어 기술이다. BIOS처럼 메인보드 칩에 내장되어 컴퓨터 전원이 켜지면 가장 먼저 실행되는 역할을 하지만, 그 내부 구조와 기능은 BIOS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UEFI는 마치 본격적인 운영체제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실행되는 '작은 운영체제'와 같아서, 훨씬 더 유연하고 강력한 기능들을 제공한다.
오랜 시간 동안 PC의 표준이었던 BIOS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명확한 한계에 부딪혔다. UEFI는 바로 이러한 BIOS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했다. UEFI가 해결한 BIOS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 2.2TB 용량의 벽: BIOS는 MBR(Master Boot Record) 파티션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방식은 최대 2.2TB의 디스크밖에 인식하지 못한다. 4TB, 8TB 하드가 보편화된 지금은 치명적인 단점이다. UEFI는 GPT(GUID Partition Table) 방식을 사용하여 사실상 디스크 용량의 한계 없이 사용할 수 있다.
- 느린 부팅 속도: 16비트 프로세서 모드로 동작하는 BIOS는 하드웨어 초기화 과정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어 부팅 속도가 느렸다. 반면 32/64비트로 동작하는 UEFI는 여러 하드웨어를 병렬로 초기화할 수 있어 부팅 속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 보안의 취약점: BIOS는 부팅 과정에서 악성코드가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보안 기능이 거의 없었다. 이는 부트킷(Bootkit)과 같은 악성코드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
UEFI는 단순히 BIOS의 불편함을 개선한 것을 넘어, 현대 컴퓨팅 환경에 필수적인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 그 핵심적인 장점을 살펴보자.
- 시큐어 부트 (Secure Boot): UEFI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이다. 컴퓨터가 부팅될 때 실행되는 모든 소프트웨어(부트로더, OS 커널 등)가 신뢰할 수 있는 제조사에 의해 서명되었는지 확인하는 보안 기술이다. 만약 서명되지 않았거나 악성코드에 의해 변조된 소프트웨어가 발견되면 부팅을 차단하여 시스템을 루트킷이나 랜섬웨어 같은 위협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보호한다. 윈도우 11의 공식 설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 직관적인 그래픽 인터페이스 (GUI): 텍스트 기반의 BIOS와 달리, UEFI는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는 화려하고 직관적인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제공한다. 이는 사용자가 훨씬 쉽고 편리하게 시스템 설정을 변경할 수 있도록 돕는다.
- 네트워크 기능 및 유연성: UEFI는 자체적으로 네트워크 드라이버를 내장할 수 있다. 이는 운영체제가 부팅되기 전에도 원격으로 시스템을 진단하거나, 네트워크를 통해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등의 고급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UEFI는 단순한 '신형 BIOS'가 아니다. 이는 대용량 저장 장치, 빠른 부팅 속도,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시스템 보안을 위한 현대 컴퓨터의 필수적인 기반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PC가 더 빠르고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UEFI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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